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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ie holiday

AMY_SHIN 2007. 11. 11. 02:18
 
 

Billie holiday

 Billie Strange

흑인 슬럼가의 두 청춘 남녀는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빌리 홀리데이를 잉태하고 출산한다. 이 때 아버지는 16살, 어머니는 13살이었다. 정식 결혼도 없이 태어난 이 아기는 일단 어머니쪽 성을 따라 엘리노어(Eleanor) 페이건이라 불렀다. 그녀는 당시 교육받지 못한 흑인 여성들 대개가 그러하듯이 백인 가정의 흑인 하녀로 일하고 있었는데 임신한 것이 들통나 그 마저 쫒겨나고 만다.

 빌리의 아버지는 그녀를 팽개쳐두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유랑악단을 따라 떠나버리고 만다. 아버지가 없는 중에 빌리를 출산하기는 했지만 어린 빌리를 양육할 능력이 없었던 빌리의 어머니는 어린 아기를 외가에 맡기고 일자리를 찾아 뉴욕으로 훌쩍 떠나버린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빌리 홀리데이 유년기의 상처는 평생을 두고 그녀를 괴롭혔다. 훗날 재즈 가수로 명성을 얻어 대중의 각광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순간까지도 그녀는 평생을 두고 혼자 남겨지게 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과 사랑받지 못한다는 콤플렉스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했다.

 1941년 캘리포니아의 한 나이트 클럽 매니저인 제임스 먼로를 만나 첫번째 결혼을 했지만 그는 바람둥이에 아편 중독자였다. 거기에 겹쳐 빌리 홀리데이의 모친마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마음의 평정을 잃은 빌리 홀리데이는 마약에 빠져들었고, 간신히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맨하탄의 개인요양원을 찾았지만 이 요양원측의 밀고로 마약단속반원에 체포되고 만다. 결국 빌리 홀리데이는 이때 마약상습복용자 명단에 올라 평생의 굴레를 뒤집어 쓰고 만다. 그녀는 마약법 위반 혐의로 9개월간 복역한 뒤 출소한다. 출옥 뒤에 가진 카네기 홀 컴백 공연에서 빌리 홀리데이는 대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지만 뉴욕시는 마약전과자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나이트클럽 공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다시 전국을 떠돌며 노래를 불러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공연은 가는 곳마다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새 남편 존 레비는 그녀의 수입을 갈취했고, 공연은 매번 성공했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수입은 거의 없었다. 1950년 결국 레비와도 헤어진 그녀는 이듬해 루이스 맥케이와 결혼한다. 그녀는 재기에 성공했고, 1954년에는 유럽 순회공연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마약수사국이었다. 그녀와 남편 맥케이는 불법무기,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당한다. 그녀의 인생을 통틀어 다서번째 형무소행이었다. 결국 얼마 안가 풀려나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몰아닥친 불행으로 빌리 홀리데이는 정서불안과 음주, 마약 등으로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지고 만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망가져 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무리해서 공연과 음반 취입을 계속했다. 그리고 결국 1959년 그녀는 쓰러졌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병원에 입원한다. 그리고 그녀는 병실 침대에 누운 채 평생 마지막으로 체포된다.

그녀가 마약을 소지하고 있으리라는 추정만으로 이루어진 체포였다. 경찰은 다섯 차례에 걸친 투옥과 전직 창녀, 마약상습복용자 블랙 리스트에 올라있는 니그로의 인권 따위는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병원의 의사나 간호원들 역시 엘리노어 페이건이라는 본명으로 기재된 그녀의 환자 카드만 보고 환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그들은 마약에 찌들대로 찌든 채 병실에 누워있는 검둥이 여자에게 진정제만을 주사했을 뿐이다. 그들에게 이런 광경은 거의 매일 거듭되는 일상에 불과했다. 1959년 7월 17일. 불과 44세의 나이로 빌리 홀리데이는 숨졌다. 그녀의 진료 기록판에는 "병명: 마약 중독 말기 증상, 치료 방법: 없음"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Think-

빌리 홀리데이, 그녀의 삶은 남달랐다. 요즘 우리는 자신 스스로가 가장 불행한 양 생각하곤 한다. 나 스스로도 여지껏 그래왔던 것 같다. 가족, 환경을 비롯해서 어떤 것도 쉽사리 얻은 게 없다고 생각했고 이런 삶 자체는 내 열등감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주변을 조금만 더 둘러보아도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 우리는 그들을 외면한 채, 이기심에 빠져 자신만을 생각하는 주의가 팽배해져 버렸다.

 나는 그녀가 실제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의 일생이 보통 사람들 보다 피폐하고 악에 찌들어져 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자책하고 누군가를 원망했을 지도 모른다. 나 조차도 만일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고 그녀와 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더 이상 남은 여생에 미련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한 사실은, 그녀는 자신의 재능만큼은 스스로를 믿었다는 것이다. 비록 삶이 힘들고 지쳐 방탕의 길로 빠졌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자신이 원하고 유일한 희망이었던 '음악'만큼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한다. 그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야 할 최소한의 행복도, 그 외의 어떤 소유물도 없었다. 오로지 가야할 길도 갈 수 있는 길도 '음악'뿐이 었던 것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 힘겨운 삶이었고, 희망도 미래도 보이지 않았겠지만, 음악만큼은 그녀가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었기에, 크나큰 위로가 될 만큼 큰 부분을 차지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짧은 생이었지만, 음악이 있어 삶의 이유가 되었고, 그로인해 산전수전을 다 이겨내고, 누구든 포용할 수 있을 그러한 목소리가 창조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독특한 그녀만의 창법과 더불어 애환이 서려있다.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이 고의적으로 시력을 잃으면서 까지 일궈내려던 그런 목소리를, 허구가 아닌 실제에서 온갖 고난과 역경으로서 완성시켰다. 그 어떤 기교보다도 더 값진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가 살았던 시대와 상황에 맞물려 너무나도 큰 고통으로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 어느누가 모방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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